세종이야기 /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

인간세종

세종대왕

  • 이름 : 이 도 (李祹)
  • 자 : 원정(元正)
  • 시호 : 세종대왕(世宗大王)
  • 출생지 : 한양 준수방 (현재의 서울특별시 통인동 경복궁 영추문 근처)
  • 생년월일 : 1397년 4월 10일(음력) / 5월 15일(양력) (~1450년 2월 17일 승하)
  • 재위기간 : 1418년 8월 ~ 1450년 2월 (31년 6개월)
  • 가족관계 : 아버지 – 태종(太宗) 이방원
    어머니 – 원경왕후(元敬王后) 민씨
    왕비 – 소헌왕후(昭憲王后) 심씨
    자녀 – 조선 제 5대왕 문종 등 18남 4녀
  • 취미 : 공부, 독서
  • 성격 : 이지적이며 실리주의적임. 때로는 과단성이 있어 카리스마를 발휘
  • 특이사항 : 높은 학구열, 빠르고도 영민한 판단력
  • 특기 : 절대 음감의 소유자(편경의 소리를 듣고 음이 틀린 것을 한 번에 알아 맞힘)
  • 신체사항 : 의젓하고 당당한 풍채, 지나친 독서로 인한 안질환
  • 좋아하는 음식 : 고기, 앵두
  • 좋아하는 운동 : 무예 습득과 건강 증진을 위한 격구와 강무
  • 세부능력 : 과학, 음악, 서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두루 정통함
    토론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경청함
  • 관심사 : 오직 백성을 위해 필요하고 쓸모 있는 것
  • 가치관 및 정치 이념 : 민본과의 소통
    “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,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.”
  • 주요경력 : 조선 4대 임금 재위 (1418~1450)
    백성을 위한 정치활동을 활발히 진행

민본사상

부민고소금지법

부민고소금지법이란

  • 백성이나 하급 관리가 수령의 잘못을 고발하는 것을 금지한 법으로 1420년(세종 2) 허조(許稠, 1369-1439) 등의 건의로 제정
  • 주요 내용 : 수령에 대한 반역죄와 불법살인죄에 대한 고소는 허용하되, 그 밖의 사안은 허용하지 않으며, 죄가 없음이 밝혀질 경우에는 고소자를 처벌한다는 것

세종대왕의 개정

  • 이 법으로 백성들의 억울함이 늘어가자 세종은 1433년(세종 15)에 부민고소금지법을 개정
  • 개정 내용 : 백성의 고소를 받아들여 억울함을 들어주되 그 고소로 인해서 수령을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것
  • ※이것은 중용의 정치를 추구하거나 절충의 해법을 찾아나가는 세종식 정책결정의 좋은 사례

노비출산휴가제도

  •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출산 후 7일 이후에 반드시 복무를 해야했던 열악한 위치의 관노에게 세종은 출산 1개월 전부터 복무를 면제하게 해주는 등 총 130일의 출산휴가를 줌
  • 이어서 4년 뒤에는 노비의 남편에게도 1개월 간의 휴가를 줌
  • “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이다”

전세제도 여론조사

  • 종래의 전세(田稅 : 논밭에 부과되는 세금)제도는 관리의 부정으로 인하여 농민에게 주는 폐해 심각
  • 이에 따라 세종은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는 이 제도를 개혁하기 위하여 1430년(세종 12) 3월에 여론조사 실시
  • 이때 실시한 여론조사에는 전국 17만 여명의 관원과 백성들이 참여하였으나 제대로 결론을 내지 못함
  • 그러자 1436년(세종 18)에는 공법상정소(貢法詳定所)를 설치하여, 공정한 세금측정을 위한 꾸준한 연구를 거듭하여 드디어 공법 확정

한글창제

훈민정음 창제 과정과 원리

훈민정음 창제 과정

  • 1443년 (세종 25) 음력 12월에 창제를 완성
  • 3년 동안 다듬고 이를 실제로 써 보아 그 부족함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 반포
  •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모두 28자였으나, 그 중 ㆍ(아래아), ㆆ(여린히읗, 된이응), △(반치음), ㆁ(옛이응, 꼭지이응)이 사라지고 지금은 24자만 사용

훈민정음 창제 원리

  •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자음 기본 문자 ㄱ, ㄴ, ㅁ, ㅅ, ㅇ은 사람의 발음 기관을 본떠 만듦
  • 초성(初聲) 17자는 사람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고 이에 획을 더하여 나머지 글자를 만듦
  • 중성(中聲) 11자는 천, 지, 인(天, 地, 人)의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듦
  • 나머지 글자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배합하여 만듦

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글자 한글

  •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글자 한글
  •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성을 표현하는 표음문자인 한글은 업무 능력 면에서 한자나 일본어에 비해 7배 이상 경제적 효과
  • 적은 수로 가장 많은 음을 쓸 수 있는 문자이기도 한글은 1만 2768가지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,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
  • 쉽고 빠른 정보 입력과 전송, 뛰어난 소리 표현과 이를 통한 음성인식으로 한글은 정보화 IT시대에 진가 발휘
  • 한글은 세계의 문자 중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, 디지털 기술로 조합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자

과학과 예술

해시계 앙부일구(仰釜日晷)

양부일구는?

  • 1434년 (세종 16) 에 장영실, 이천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솥을 받쳐놓은 듯한(仰釜) 형상
  • 오목한 그릇 형태는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
  • 작은 크기로도 효과적으로 시각선, 계절선을 나타내기 위함

양부일구의 구조와 원리

  • 영침의 길이는 앙부일구 지름의 1/2
  • 영침의 끝은 앙부일구의 중심에 위치하며 방향은 북쪽
  • 안쪽 면에는 13개의 계절선과 7줄의 시각선이 새겨져 있음
  • 영침의 그림자가 태양의 이동에 따라 움직이며 시각을 가리킴

천상열차분야지도(天象列次分野之圖)

천상열차분야지도란?

  • 조선 초기부터 석각본, 목판본, 필사본 등으로 제작•보급된 한국의 전천천문도(全天天文圖)
  • 우리나라에서 관측한 1467개의 별과 282개의 별자리를 돌에 새긴 것

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 배경

  •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 떠있는 해, 달, 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아 하늘을 보며 날씨를 예측하고 미래를 점치기도 함
  • 이러한 관심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뛰어난 천문도가 만들어진 주요 요인
  •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거나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그 당위성을 드러내기 위해 제작되기도 함

군사정책

대마도 정벌

  • 1419년(세종 1) 5월, 왜선 39척이 비인현에 침입하여 병선을 불태우고 약탈하는 사건 발생
  • 왜구의 침범이 점점 잦아지자 세종은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공략하기로 결정하고, 이종무를 총지휘관으로 임명
  • 이종무는 한 달 뒤인 1419년 6월, 227척의 병선과 군사 1만 7천여 명을 이끌어 대마도 정벌에 성공
  • 대마도 정벌은 수십 년간 계속되던 조선의 근심거리를 제거하고 대일외교의 새로운 전기 마련

이만주 토벌과 4군(四郡) 설치

  • 1432년(세종 14) 12월, 오랑캐 추장 이만주가 휘하의 여진족 400여 기(騎)를 이끌고 여연 지역에 침입
  • 세종은 이 사건을 이용해 여진족을 제압하고 북방영토를 개척하는 기회로 삼아 1433년(세종 15)
  • 음력 1월 최윤덕(崔潤德)을, 1436년(세종 18) 음력 6월 이천(李薦)을 평안도도절제사로 삼아 보내어 2차에 걸쳐 오라산성(兀刺山城)의 야인 소굴 소탕
  • 세종은 야인 토벌에 멈추지 않고 북방영토개척을 추진
  • 그 결과 4군(여연, 자성, 무창, 우예)이 설치됨으로써 압록강 이남이 완전히 우리 영토가 됨

6진(六鎭) 개척

  • 1433년(세종 15) 여진족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세종은 김종서를 함길도도절제사로 임명하고, 적극적인 북진정책에 나섬
  • 이듬해 6진(회령, 경원, 온성, 종성, 경흥, 부령) 설치 시작
  • 1442년(세종 24) 훈융(訓戎 ;경원 북방)에서 독산연대(禿山烟臺 ;회령 서방)까지 장성을 쌓고 석막에 부령부를 설치하여 6진 완성
  • 그 뒤 여진족은 서방쪽으로 이주
  • 세종은 6진에 각 도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개척
  • 조선의 영역은 장성 밖 일부 지역을 제외한 두만강 이남 전역에 이름

성웅 이순신의 생애

충무공 이순신

  • 본관 : 덕수(德水)
  • 이름 : 순신(舜臣)
  • 자 : 여해(汝諧)
  • 시호 : 충무(忠武)
  • 출생지 : 서울 건천동(지금의 중구 인현동 부근)
  • 생년월일 : 1545년 3월 8일 ~ 1598년 11월 19일(음력)
    “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”
  • 성격 : 진중하고 올곧음
  • 취미 : 일기쓰기
  • 특기 : 화살 쏘기, 격투, 말타기
  • 좋아하는 음식 : 장국, 어육각색간랍(쇠고기 내장과 생선으로 만든 전), 장김치, 멸치젓

장군의 삶에 바치는 시호, 충무공

시호(諡號)란?

  • 조선시대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 가운데 나라에 큰 공이 있으면 사후에 추증하는 호
  • 시호는 살아생전의 행적을 참고하여 신중하게 결정

이순신 장군에게 내려진 시호 ‘충무 ’

  • 내 몸이 위태로워도 위를 받드는 것을 ‘충(忠)’이라 하며 쳐들어오는 적을 물리쳐 치욕을 막는 것을 ‘무(武)’라 한다는 뜻의 ‘충무(忠武)’는 무관에게 가장 영예로운 시호

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높이 평가된 공적

  •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선무공신(宣武功臣) 1등에 오름
  • 순국한 지 45년이 지난 1643년(인조 21)에 ‘충무’라는 시호 받음
  • 1793년(정조 17)에는 영의정(領議政)의 직함이 더해짐

조선의함선

조선의 주력 전투함, 판옥선(板屋船)

  • 1555년(명종 10년)에 만든 신형 전투함
  • 조선 전기에 개발된 맹선(猛船)보다 규모가 큼
  • 상장 갑판을 설치하여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공간을 나누어 제작
  • 기동성이 좋고 견고하여 을묘왜변(乙卯倭變) 이후에는 가장 중요한 전투함 역할을 수행
  • 특히 임진왜란(壬辰倭亂) 때에는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거북선[龜船]과 더불어 많은 활약

당대 세계 최고의 돌격선, 거북선[龜船]

  • 주력함이었던 판옥선(板屋船)을 기반으로 제작된 돌격선
  • 적진을 종횡으로 뚫고 들어가 전열을 무너뜨리는 것이 주 임무
  • 전투원이 적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는 판옥선의 약점을 보완
  • 적선에 근접하여 함포(艦砲)를 쏠 수 있도록 제작

임진왜란 당시, 3국의 전투함 비교

조선

  • 판옥선(板屋船) : 소나무로 제작, 평저선, 대형 화포를 장착하여 적선 공격, 신속한 방향 전환
  • 거북선[龜船] : 소나무로 제작, 평저선, 판옥선 위에 덮개를 덮고 뾰족한 창칼을 꽂음, 신속한 방향 전환, 선체 앞뒤 측면에 화포 장착하여 사방 공격 가능

일본

  • 아다케부네(安宅船) : 삼나무로 제작, 첨저선(尖底船), 정면으로 나아가는 속도 빠름, 방향 전환 느림
  • 세키부네(関船) : 아다케부네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, 하야부네라고도 불림

중국(명)

  • 사선(沙船) : 평저선, 여러 개의 돛대 설치, 배의 앞뒤가 사각형 평면을 이룸, 역주 성능 매우 우수
  • 호선(唬船) : 비교적 작은 군선으로 속력이 매우 빨라 연해를 정탐하거나 적선을 쫓기에 편리

7년간의 해전사

임진왜란

발생배경

  • 1590년 센고쿠 시대의 막을 내리며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발생
  •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통일 후, 일본 전역에 흩어진 힘있는 세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정권을 안정시키고, 불평세력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자 ‘명나라 정복을 위해 길을 빌린다’는 명목으로 1592년 조선 침략 전쟁은 7년간 지속

결과

  • 1598년 8월,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일본군이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종식
  • 조선 조정의 전쟁 극복 노력, 제해권(制海權)을 장악하며 병참선(兵站線)을 끊은 조선 수군의 활약, 의병들의 조직적인 유격전 활동, 우방 명나라의 원군 파병 등이 이끌어낸 승리

대표해전

옥포해전(1592년 5월 7일 정오) / 옥포(경상남도 거제시)

  • 해전 경과 : 이순신 장군의 첫 출전, 조선 함대는 우세한 화기(火技)와 궁시(弓矢)를 이용한 공격으로 일본군을 거침없이 격파하여 일본 전선 26척을 분멸(焚滅)

한산대첩 (1592년 7월 8일 오전) / 견내량과 한산도 앞바다(경상남도 통영시)

  • 해전 경과 : 일본 함대를 넓은 바다로 유인하는 전술을 구사한 후, 학익진(鶴翼陣,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진형)을 형성하여 일본 함대를 에워싸 일본군을 궤멸

명량해전 (1597년 9월 16일 오전 10시 전 후 ~ 오후 3시) / 명량 수로(진도와 해남군의 화원반도 사이)

  • 해전 경과 : 대형 군선 아다케부네가 통과하기 어려운 좁은 수로를 해전 장소로 삼고 조선 수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간 조류를 이용하여 대승

노량해전 (1598년 11월 19일 이른 새벽부터 정오경까지) / 노량해협 . 관음포 (경남 남해군)

  • 해전 경과 : 화력 면에서 우세한 전력을 갖추어 일본군보다 먼저 노량 수로를 막고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시작했던 조•명 연합 함대 대승리, 그러나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장수 10여 명과 명나라 부총병(副樬兵) 등자룡(鄧子龍) 등 많은 장졸이 전사

임진왜란 후 3국의 변화

조선(朝鮮)

  • 전쟁터였던 조선은 전국토가 황폐해짐
  •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난 후까지 국가의 호적 대장에서 파악된 인구수는 전쟁 이전의 3분의 1수준

명나라(明)

  • 조선 다음으로 큰 타격
  • 20만여 명의 지원군을 파견하면서 막대한 전쟁 비용을 지출한 결과 국가 재정이 어려워짐
  • 만주(滿洲)의 여진족(女眞族)은 조선과 명이 전란에 휩쓸린 틈을 타고 급속히 세력을 키움
  • 명나라는 여진족에 의해 멸망하고 여진족은 중국 최후의 통일 왕조인 청나라(淸) 건국

일본(日本)

  • 도요토미 히데요시(豊臣秀吉)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(德川家康)의 막부(幕府) 정권이 들어섬
  • 조선으로부터 들여온 금속활자(金屬活字)의 영향으로 인쇄술이 크게 발달
  • 포로로 잡아간 도공(陶工)을 중심으로 도자기의 제작 기술이 급격히 발전

난중일기를 통해 본, 인간 이순신

7년간의 난중일기

난중일기

  •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기로 ’난리 중에 쓴 일기’라는 뜻
  •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전사하기 전까지의 7년 동안의 일들을 기록
  • 개인의 일기가 국보로 지정된 것은 유일한 예
  • 국보 76호로 지정되어 현재 현충사에 보관

특징

  • 진중(陣中)이었지만 날짜를 꼬박꼬박 적고, 날씨까지 기록
  • 그날 그날의 공무(公務)뿐만 아니라 동료, 친척과의 왕래부터 수군 통제에 관한 일들을 세세하게 기록

난중일기에 실린 자식 사랑

막내아들 면(葂)의 전사 소식을 접한 이순신의 기록

  •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는데,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. 겉봉을 대강 뜯고 (둘째 아들)열의 글씨를 보니, 겉에 ’통곡’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. (중략)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네 몸에 재앙이 미친 것이냐. 이제 내가 세상에 산들 누구를 의지하겠느냐. 울부짖기만 할 뿐이다.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. <난중일기> 1597년 10월 14일

이순신의 리더십

세계가 존경하는 인품

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(George Alexander Ballard, 1862~1948)
영국의 해군 제독. 그의 저서 <바다가 일본 정치 역사에서 미친 영향> 중에서.

  • “이순신(李舜臣)은 서양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.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는 능력과 해군 전술의 비상한 기술과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 원칙을 바탕으로 한 놀라운 리더십을 겸비하고 있었다.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. 영국인에게 넬슨과 견줄 수 있는 해군 제독이 있다는 사실은 시인하기 힘든 일이지만,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 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.”

버나드 로 몽고메리 (Bernard Law Montgomery, 1887~1976)
영국군 총사령관. 그의 저서 <전쟁의 역사> 중에서.

  • “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. 장군 이순신은 전략가이자 전술가였고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 제작에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. (중략) 일본 해군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장군 이순신의 철갑 전투함(거북선)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.”

사토 데쓰타로 (佐藤鐵太郞,1866~1942)
일본 제국의 해군 중장, 1926년 <조선 지방 행정> 제 6권 2월 호 중에서.

  • “해군 장군인 내가 평생을 두고 경모(敬慕)하는 바다의 장수로 네덜란드의 로이테르(Ruyter)와 조선의 이순신이 있다. 그 중에서 갑과 을을 정하라 한다면 서슴지 않고 이순신을 먼저 추천할 것이다. 영국의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그 인격에 있어서나 창의성에 있어서는 도저히 이순신의 짝이 될 수 없다.”

도고 헤이하치로(東鄕平八郞, 1848~1934)
일본의 해군 제독.

  • “칭찬을 받아서 고마우나 나로서 말한다면 넬슨은 군신은 아니다. 진정으로 군신의 칭호를 받을 만한 제독이 있다면 그것은 이순신일 것이다.”